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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人物

시어도어 카진스키, 유나버머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1942년 시카고에서 폴란드계 소세지 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총명한 어린이로 유명했는데, 시카고 교외의 에버그린 파크에 있는 고등학교를 2년이나 뛰어넘어 월반으로 졸업하였고, 사회적 활동도 대거 참여하였다. 그 후 16살에 어린나이로 하버드대학교에 입학한 카진스키는 엘리어트 하우스 기숙사에서 5 명의 동료 학생들하고 같이 지냈지만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이상한 인상을 가지지는 않았다.
  카진스키는 20살이 되던 해에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하였고, 미시간 대학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마치고, 캘리포니아 주립대 버클리 캠퍼스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는 버클리 세계 최고의 수학과에서 종신교육이 보장된 조교수직을 시작하였는데, 2년 후 학교에 사표를 내고 몬태나로 떠나게 되었다. 땅을 구입하고 집을 짓고 자신이 기를 수 있거나 잡을 수 있는 것을 먹으며 살아가기 시작했다.  그는 일년에 불과 몇 백 달러로 생활을 꾸려나갔고, 그에겐 점점 뚜렷해지는 자신의 소명을 이루기 위한 충분한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그가 뒤에 남겨 두고 온 산업사회를 붕괴시켜야 한다는 소명이었다.
 
그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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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abomber, 시어도어 카진스키


바로 17년간 세상을 떠들석하게 했던 시어도어 카진스키, 바로 유나버머(Unabomber) 였다.

유나버머(Unabomber, university and airline bomber)로 주로 대학교와 항공사를 주로 테러타겟으로 삼았던 이유로 FBI 에서 지은 암호명이였다.
  그는 우편물에 폭탄을 넣어서 무작위로 사람들에게 보내, 3명을 살해하고 29명에게 크고 작은 부상을 입혔던 테러범이다. 그 후, 그는 여러 거대 신문사에게 편지를 보내 그가 쓴 '산업사회와 그 미래(Industrial Society and it's future)' 를 게재하면 테러를 중단한다고 했는데 결국 게재했고 그는 테러를 중단하였다. 그 후 그의 동생이 집을 청소하던 중, 그의 형이 썼던 협박문과 일기장을 발견하게 되고 결국 시어도어 카진스키는 몬태나에서 체포되고 말았다.

고학력이자 천재인 시어도어 카진스키의 이런 일탈행동 또한 최근들어 발생했던 조승희의 총기 난사사건은 결국 인성교육을 무시한 학교교육의 폐해를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그가 쓴 '산업사회의 그 미래'의 전문을 보려면 다음 사이트로 가세요
http://en.wikisource.org/wiki/Industrial_Society_and_Its_Fu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