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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人物

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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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의 성자, 알버트 슈바이처.

이번 글에서는 알버트 슈바이처의 위대함과 그의 일생의 모든 것에 대해 알아보자.












알버트 슈바이처
( Albert Schweitzer , 1875.1.14~1965.9.4 )


  아프리카의 성자 ( A saint of Africa ) 라고 불리는 알버트 슈바이처는 1875년 1월 14일, 알자스 지방의 카이저버그 (당시 독일령) 에서 태어났다. 슈바이처는 Gunsbach 에서 유년시절을 보냈고,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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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바이처는 1893년 까지, Mullhouse 에서 고교생활을 하였고 Baccalaureate (바깔로레아, 프랑스의 고교졸업시험, 우리나라의 수능과 같다) 를 통과했다. 그 후 파리로 건너가 철학과 음악을 공부하였고, 나중에 다시 알자스 지방 (고향) 으로 돌아오기 전까지 Kaiser Wilhelm Universität of Strasbourg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였다 (철학박사와 신학박사 학위를 땄다). 그가 30세가 되었을 때, The Society Of The Evangelist Missions Of Paris 에서 의사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의학을 공부하였다. 의학박사가 된 후에 슈바이처는 1913년에 간호사 교육을 받은 아내 헬레네와 함께 가봉의 랑바라네 (그 당시 프랑스령) 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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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바라네에 있던 병원


  그 곳에서 오고우 강둑위에 주민들의 도움으로 병원을 세우게 된다. 처음에는 자신의 수입으로 모든 비용을 충당하다가 나중에 세계 각국에 기구에서 자금이 들어와 그들의 기부금으로 보충하게 되었다. 1차 세계대전 때, 슈바이처는 당시 독일사람이라는 이유로 프랑스 포로수용소에서 지내다가 프랑스로 억류 된 후 풀려났다. 그 후 아프리카로 다시 돌아온 슈바이처는 병원을 다시 세우기 위해서 1924년 아프리카로 돌아와 오고우 강 위쪽 3.2 km 부근에 병원터를 짓고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추가로 세우게 된다. 1936년에는 350명 정도의 환자와 그들이 친척이 있었고 36명의 백인 간호사와 의사들도 있었다. 그 후 그의 공로를 인정받아서 1952년 노벨 평화상을 받고 1965년 9월 4일 잠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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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는 가난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한평생 몸 받혀 돈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진료해 주었다. 우리는 그의 헌신적인 태도를 본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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